-1914년 마세라티 가문 6형제에 의해 설립
-1966년 주지아로의 기블리 첫 탄생
-레이싱계를 주름잡았던 1950년대
-파파로티의 소리를 닮은 배기음
매혹적인 디자인, 폭발적인 성능, 아름다운 배기음의 대명사 마세라티는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초기 레이싱 대회에서의 빛나는 업적과 이탈리아 천재 디자이너 주지아로의 만남, 라이벌이었던 페라리와의 협업까지 마세라티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마세라티 6형제와 삼지창 엠블럼
마세라티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마세라티가(家)의 여섯 형제들의 자동차와 레이싱에 대한 열정으로 설립됐다.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기술자인 넷째 알피에리는 1914년 볼로냐에서 조그마한 사무실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을 여는데 현 마세라티의 전신이다. 모든 제작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졌으며 다른 형제들과 함께 레이싱카를 주문 제작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꾸려갔다. 그러다 1926년 자체 제작에 성공한 마세라티는 '티포 26'을 세상에 선보인다.
마세라티 형제들
형제 중 유일하게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예술가로 활동했던 다섯째 마리오는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의 넵투누스(바다의 신 포세이돈) 조각상의 삼지창에서 모티브를 얻어 마세라티의 상징인 '트라이던트(삼지창)'를 창조했다. 바다의 신의 강인함과 활력을 상징하는 삼지창은 마세라티의 모든 경주차에서부터 적용되며 브랜드의 역사를 함께하게 된다.
▲본격적인 양산차 제작...주지아로의 기블리 탄생
1937년 마세라티 형제가 회사를 오르시 가문에 넘기며 본사는 모데나로 옮긴다. 1947년 '레이싱용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라는 컨셉트로 지금의 그란투리스모 기본형인 'A6 1500'을 출시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마세라티는 이탈리안 특유의 감성적인 디자인과 성능이 조화를 이룬 그랜드 투어링카(GT) 제작에 집중했는데 이러한 기조 아래 출시한 '3500GT'는 9년간 2,000여대 가까이 팔리며 브랜드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다.
삼지창 엠블럼
1960년대에 들어서며 회사는 8기통 엔진을 탑재한 제품 개발에 전념하며 럭셔리 스포츠 세단 시장에 입문한다. 1963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첫 번째 4도어 세단 '콰트로포르테'를 공개하고 이후 1966년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기블리'로 찬사를 받게 된다. 이어 마찬가지로 주지아로가 설계한 양산형 미드십 '보라'가 1971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바이터보'를 출시하며 주목을 받는다.
▲페라리와의 조우...그리고 현재
마세라티는 1997년 피아트의 계열사인 페라리에 소유권이 넘어가게 된다. 이 시기부터 공장에 현대식 설비를 갖추고 종전 각진 디자인에서 곡선의 디자인으로 바꾸는 등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특히 오랜 라이벌 관계였던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파트너십을 통해 힘을 합치게 되는데 그 결과 페라리의 V8 엔진을 장착해 380마력의 최대 출력을 발휘하는 '3200GT'가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다.
페라리 V8 엔진
2003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등장한 5세대 콰트로포르테와 2007년 제네바모터쇼에 데뷔한 그란투리스모는 스포츠카 디자인의 대부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의 작품으로 마세라티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2013년 6세대 콰트로포르테와 기블리를 잇달아 출시했으며 2014년에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컨셉트카 알피에리를 선보이며 창립 100주년을 기념했다. 마세라티는 브랜드 최초의 SUV인 르반떼를 2016년 제네바에서 공개한 이후 초고성능 SUV 르반떼 GTS와 르반떼 트로페오를 잇따라 출시하며 브랜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레이싱계를 장악한 고성능 혈통
현재 마라넬로의 페라리 공장에서는 마세라티만을 위해 독점 제조하고 수작업으로 조립되는 V6와 V8 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제품이 생산 중이다. 지금의 고성능 기술력을 선점하기 위해 마세라티는 설립 초기부터 모터스포츠 부문에 전념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알피에리 마세라티
창립자 알피에리가 드라이버로 참가했던 1926년에는 마세라티가 처음 생산한 '티포 26'과 함께했다. '타르가 플로리오'에 처녀 출전했던 알피에리는 티포 26과 우승을 차지하고 모터스포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레이싱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차는 바코닌 보르짜치니와 함께한 'V4'였다. 16기통 초대형 엔진을 장착한 V4는 1929년 이탈리안 그랑프리에서 처음 선보이며 최고속도 246.069㎞/h로 세계기록을 수립한다.
1950년대에는 아르헨티나 출신 드라이버 후안 마뉴엘 판지오를 만나 황금기를 보냈다. 판지오는 '250F'와 함께 1954년 아르헨티나, 벨기에 그랑프리, 1957년 독일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둔다. 역대 F1 무대에서 최고의 드라이버라는 찬사를 받는 판지오는 총 51회의 그랑프리에 참가해 24승을 거두어 F1 역사상 최고인 47% 승률을 기록한다.
250F
1957년 250F의 우승을 끝으로 마세라티는 레이싱대회에 더 이상 출전하지 않기로 선언한다. 공식 은퇴까지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 그랑프리 대회 등에서 500여 회의 우승 기록을 세운 마세라티는 고성능 도로용 자동차 생산과 판매에 집중하기로 한다. 엔초 페라리가 가장 이기고 싶어했던 레이싱카로서 초창기 레이싱계의 한 획을 그었던 마세라티의 고성능 기술력과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운드의 미학...그리고 파파로티
마세라티는 고성능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같은 배기 사운드로 유명하다. 본사의 엔진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와 함께 튜닝 전문가, 피아니스트, 작곡가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악보를 그려가며 배기음을 조율한다.
파파로티와 3세대 콰트로포르테
고유의 배기음은 20세기 최고의 테너로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도 인연이 깊다. 마세라티는 1984년 본사를 파바로티의 고향인 모데나로 옮기면서 그와의 첫 만남을 가진다. 이후 마세라티 마니아가 된 파바로티는 직접 본사에 방문해 고유의 사운드가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1963년에는 세브링을 직접 구입했다.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마세라티의 배기음과 파바로티의 음악적 성향이 매우 닮았다고 평가했다. 배기음이 부르짓는 고음 파트가 파바로티의 강렬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을 떠올리게 했다는 후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마세라티는 배기음을 보다 아름다운 사운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9월 일본 시즈오카에 있는 사운드디자인라보합동회사, 주오대 음향시스템 연구실과 함께 '엔진음 쾌적화 프로젝트'라는 실험을 진행한다. 콰트로포르테의 배기음과 5가지 바이올린의 소리를 각각 피실험자에게 들려주고 심박 수와 혈류량 등을 측정한 것. 그 결과 배기음과 가장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낸 바이올린은 전설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마세라티는 소음으로 여겨지던 배기음 조차 감미로운 도로 위의 음악과 예술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던 것이다.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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